어떻게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을까요.
길섶교회가 9년차를 시작하며, 그동안 만났던 분들을 떠올려 봅니다. 고민과 관심사도 다르고 나이대, 사회적 지위, 젠더, 신앙의 색깔도 다른데 동행하며 서로에게 배웠습니다. 그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거리감
다양한 거리감이 함께 있습니다.
처음에는 매주 만나는 오프라인 공동체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주 오시는 분과 자기 루틴으로 오시는 분, 자기 자리에서 천천히 따라오시는 분까지 저마다의 속도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교회라고 해서 하나의 거리감, 하나의 참여 방식으로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다양한 거리감이 「아무것도 하지 말자」로 들리지 않도록, 자신에게 맞는 거리가 어떤 것인지 서로에게 알려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동행하고 있다는 감각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갈등
갈등이 생긴다는 건 가까워진다는 신호입니다.
우정과 사랑이 만들어진다는 건 부딪힐 가능성에 서로를 맡긴다는 뜻입니다. 부딪힐 일이 없는 거리에서는 갈등도 없습니다.
이미 충분한 관계가 있거나 쉼이 필요하시면 먼 거리에서 참여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얼굴을 마주하며 거리를 조율하는 관계가 된다는 건, 작은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는 실험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서로에게 특별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지식, 경험의 양을 기준으로 특정한 사람만 「가르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 위계에서는 갈등이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갈등의 신호가 나타난다는 건 우리가 평등해지려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신학
신학은 신앙을 이론으로 정리한 작업입니다.
누군가는 신앙의 내용을 천천히 정리하는 중이라 아직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을 수 있고, 어떤 분은 명료한 자기 입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예수는 부활했는가 — 이런 질문에 저마다 다른 색깔의 입장이 있습니다.
부활이나 기적의 가능성, 신 존재의 실재성에 회의적이면서도 교회와 신앙생활에 진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보수적인 입장으로 신앙이 정리되었지만 자신의 신앙생활에는 진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번 오고 가는 손님이 아니시라면, 신앙 색깔이 정리된 분은 자기 이야기를 열어 주세요. 입장이 다른 분은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더 옳다거나 더 깊은 신앙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자신의 신앙과 삶을 나누며 함께 발전시켜 가면 좋겠습니다.
| 이렇게 말하면 | 이렇게 |
|---|---|
|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저는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요 |
| 기독교는 이런 거 아닌가요 | 제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
| 예수는 이런 분입니다 | 저에게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
| 삼위일체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 저는 삼위일체 교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
| 하나님이 오늘날에도 기적을 허용한다면 공정한 분이 아니시지요 | 저는 가급적 기적이나 초자연적 사건을 감안하지 않고 신앙을 생각하는 편입니다 |
| 신학이 없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 신학 공부를 하면 이런 좋은 점이 있습니다 |
정치
정치적 입장은 저마다 다릅니다.
신앙과 정치적 실천을 강하게 연결하기를 좋아하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사회운동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도 계신데,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길섶에서는 서로 정치 색깔이 다를 수 있음을 존중하면 좋겠습니다. 정당이나 단체로 활동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정치적 실천을 할 수 있고, 아직 입장을 만들어 가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 색깔을 강요하면 안 되듯, 선호하는 정당이나 단체로 과도하게 설득하는 것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관심이 있던 분께 소개하는 것은 좋습니다. 집회나 시위 참여는 교회 전체가 움직이게 하기보다, 참여하시는 분이 소개하고 관심 있는 분들이 함께하는 방식이 좋겠습니다.
공동기도문에는 특정 정당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비판이든 응원이든 마찬가지입니다.
| 이렇게 말하면 | 이렇게 |
|---|---|
| 하나님은 ○○당의 하나님입니다 | 저는 ○○당을 좋아합니다. 제 신앙과도 잘 맞습니다 |
| ○○집회에 우리 모두가 나가야 합니다 | ○○집회에 가는데 관심 있는 분 계실까요 |
| 하나님은 ○○를 싫어하실 겁니다 | 저는 ○○를 좋아하지 않지만, 저와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존중합니다 |
젠더
알수록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주제입니다.
누군가를 정죄하거나 배제하려는 분위기의 이야기는, 특히 종교 공간에서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서가 쓰이고 편집된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이삼천 년 전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오늘의 젠더 감수성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알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젠더 정체성 때문에 실수하거나 마음에 근심이 들게 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 쓰는 말과 만남의 태도를 함께 만들어 가는 분위기였으면 합니다.
성희롱·성폭력 개념은 일반 사회의 법률 개념 그대로 씁니다. 어떤 기독교 단체나 교회에서 이를 사회 개념보다 확대해 쓰는 경향이 있지만 길섶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변호사 인터뷰 영상과 검토 자료를 참고해 주세요.
길섶은 퀴어·성소수자 분들과 함께합니다. 함께하시는 분들 대다수가 자기 이야기를 열고 고민을 나누며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결혼하신 분, 자녀가 있는 분, 자녀 없이 살아가는 분, 이혼하신 분, 미혼과 비혼으로 살아가는 분이 다양하게 계십니다. 이런 주제를 언제나 이야기하고 싶은 분도 있고, 자기가 먼저 꺼낼 때만 대화하고 싶은 분도 있습니다. 어떤 삶의 방식도 강요하지 말고 응원하고 격려하며 연대하기를 바랍니다.
| 이렇게 말하면 | 이렇게 |
|---|---|
| 남성은 이래야 하고 여성은 이래야 합니다 | 저는 제 남성성(여성성, 소수자성)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 성경에 여성은 이래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 성경에 이런 기록이 있고 그래서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
| 동성애는 죄라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 동성애는 죄라고 하는 교회들이 많은데 왜 그럴까요. 이 표현들은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
| 결혼을 안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 저는 신앙과 결혼에 대해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
아래 자료는 법률가의 검토를 거쳐 만든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떤 말과 행동이 문제가 되는지, 어떤 용어를 어떤 상황에 쓰는 것이 정확한지를 다룹니다. 실제 사안이 생기면 전문가 상담이 먼저입니다.
젠더 주제는 자신의 해석을 단언하는 순간 누군가에게 생각을 강요하는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친해진 뒤에 이런 대화를 해도 될지 여쭤보고, 어떤 표현이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서로 존중할 수 있을지 배워 가야 합니다.
특히 정죄의 언어를 자기도 모르게 쓰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공동체 안에서 함께 배워 가면 좋겠습니다.
자리
사회적 지위와 경험의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모임에서 1/n로 대화하는 감각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자고 해도 늘 지켜지지는 않습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때로는 사회적 지위의 차이, 직업의 유무, 재산, 나이, 경험의 축적 차이로 대화의 흐름이나 공동체의 결정이 한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골고루 이야기하고 모두의 의견이 존중받는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 이렇게 말하면 | 이렇게 |
|---|---|
| 20~30대는 원래 그렇습니다 | 20~30대 분들께 직접 여쭤보면 어떨까요 |
| 취업 준비 중이시면 자주 나오시기 힘들겠지요 | 취업 여부와 참여 방식을 연결하지 않습니다. 각자 정하시면 됩니다 |
| 소수만 아는 신학 토론이 길어진다 | 모임이 마친 뒤 관심 있는 분들끼리 후토크로 이어 갑니다 |
|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 마치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리는 체험을 했습니다 |
주관적 종교 체험을 말할 때도 자신에게 어떤 의미와 효과가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을 위해 기도합시다」 — 누구나 크고 작은 몸의 어려움을 갖고 있지만, 법적 지위로 장애를 가진 분들도 모임에 계십니다. 눈에 띄는 장애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대화하거나 기도할 때 제삼자가 「장애인」이라는 직접적인 말을 많이 쓰는 것이 좋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유연함
거리는 유연하게 바뀝니다.
모두와 같은 거리일 수 없고, 한 사람과도 늘 같은 거리일 수 없습니다.
신앙의 수행은 나와 다른 사람과 공존하고, 갈등하고, 갈등을 풀고, 때로는 풀 수 없는 갈등과 함께 사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한 번에 우리의 말과 행동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서로 솔직하게 알려주며 작게 작게 조율해 가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