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교회
모임

설교에 대해

설교를 「성서-말씀 나눔」이라 부릅니다. 왜 그렇게 부르고 무엇을 하는지 적어 둡니다.

이름

예배 순서에는 두 이름을 나란히 씁니다. 「설교」는 바깥과 통하는 이름이고, 「성서-말씀 나눔」이 우리의 이름입니다.

성서-말씀설교자의 말이 아니라 성서의 말씀을 나눈다는 뜻. 하이픈이 그 구분입니다
성서「성경」의 경(經)이 텍스트를 높이는 뉘앙스라면, 성서는 우리 신앙의 책이라는 느낌
나눔성서 본문에 대해 설교자나 공동체가 추천하는 하나의 해석과 실천을 공유하는 것

「나눔」의 세 단어가 핵심입니다.

단어
하나의유일한 해석이 아니라 여럿 중 하나. 다른 해석이 있다는 것이 전제
추천하는명령이 아니라 추천. 안 받아도 됩니다
해석-실천해석만 하면 공부, 실천만 요구하면 잔소리. 둘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겸손의 수사가 아니라 실제로 하는 일의 기술입니다. 부수 효과도 있어요 — 「설교하세요」는 부담스럽지만 「본문 하나 골라서 자기 해석과 실천을 나눠주세요」는 문턱이 낮습니다.

바라는 것

듣는 분의 신앙이 한 칸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10이 아니라 +1이요.

한 번의 설교로 신앙이 뒤집히는 일을 목표로 잡으면, 설교가 감정을 몰아붙이거나 결단을 요구하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매주 +1이면 충분하고, 어떤 주는 0이어도 괜찮습니다.

활성화란 자기 신앙의 주체가 되는 쪽으로 한 칸 움직이는 것입니다. 성서를 스스로 해석해 보게 되는 것, 내 삶의 질문을 내가 던지게 되는 것, 남이 정해준 답 말고 내 답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

반대는 「아 그렇구나」 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정보는 늘었는데 움직일 여지는 줄어드는 상태. 신학 공부를 많이 한 설교자일수록 이쪽으로 갈 위험이 큽니다.

설교는 설교자와 듣는 사람의 주체성이 함께 형성되는 자리입니다.

「함께」가 핵심입니다. 한 사람이 계속 채우고 나머지가 계속 받는 구조는 오래 못 갑니다. 받는 쪽의 주체성이 자라지 않고 주는 쪽은 소진됩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다 채우지 않습니다. 비우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다 채우면 다른 분이 해석의 주체가 될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네 가지

① 번역 — 고대와 지금 사이 2천 년의 낙차를 건너게 합니다. 바리새파를 이중직 목회자로, 애굽을 알고리즘으로, 편집 층위를 포토샵 레이어로. 웃음은 낙차에서 저절로 나옵니다.

② 출처 구분 — 「여기까지는 학계, 여기부터는 제 생각.」 사실과 의견이 섞이면 듣는 분이 판단할 수 없고, 판단할 수 없으면 주체가 될 수 없습니다.

③ 자리 만들기 — 다 채우지 않습니다. 함께하시는 분의 글을 설교에 넣고, 못 하는 것을 위임하고, 설교 비평을 요청합니다. 겸손이 아니라 활성화의 조건입니다.

④ 재료 제공 — 결론(「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대신 재료(「각자 소화해 보세요」). 결론을 주면 소화가 안 되고 재료를 주면 소화가 일어납니다.

휘발

설교는 휘발됩니다. 30분을 말해도 다음 날 남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꾸 많이 넣게 되고, 많이 넣으면 더 안 남습니다.

그래서 방향은 하나입니다. 다 남기려 하지 말고 하나만 남기자.

실제로 1년 뒤 남은 것들은 전부 본문 안의 낱말 하나였습니다.

낱말어디서
삼킴민수기 「아칼」
치우침여호수아
카리스고린도전서 12장

짧아서 남고, 남으면 그 주 내내 굴릴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뭐에 삼켜져 있지?」 하고요.

나눔질문

설교가 휘발된다면 휘발을 막는 것은 나눔질문입니다. 대체로 이 3단 구조입니다.

순서하는 일
1번개인 경험 꺼내기 — 처음 온 분도 답할 수 있는 질문
2번오늘 설교 검토 — 「설교자 이야기 어떻게 생각하세요?」
3~4번공동체 적용 — 「길섶은 뭘 해볼 수 있을까요?」

특히 2번이 중요합니다. 방금 들은 설교를 결론이 아니라 검토 대상으로 되돌립니다.

아무리 「안 믿어도 됩니다」라고 말해도, 물어보는 절차가 없으면 설교는 정답으로 남습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절차로 만드는 것이 훨씬 셉니다.

돌아보기

2025년 6월부터 2026년 7월까지 43편을 돌아봤습니다.

하지 않은 것 — 회개 촉구 · 축복 선언 · 성구로 논증 끝내기 · 감정 고조 · 이단 규정 · 「반드시」 같은 확신 부사 · 명령형 · 복음주의 계열 인용. 여덟 가지가 43편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덟이 따로가 아닙니다. 전부 설교자가 듣는 사람보다 위에 서야 성립하는 형식입니다. 낮추는 말이 아니라 판단의 권한을 강단에서 자리로 옮기는 말입니다.

대신 한 것은 이렇습니다.

무엇얼마나
물음으로 되돌려 주며 닫은 편28편 (65%)
단정으로 닫은 편0편
「각자」가 나온 편35편 (81%)
「우리 교회로 따지면」 번역33편 80회 이상

물음을 넘기고 침묵 2분으로 갑니다. 이 침묵이 형식의 절반입니다. 물음만 던지고 광고로 넘어가면 수사적 질문이지만, 2분을 비우면 실제로 답을 만들 시간이 됩니다.

본문은 구약 40%, 신약 55%, 제2정경 5%였습니다. 구약 비중이 한국 개신교 평균의 두 배쯤 됩니다. 다룬 주제는 공동체와 우정, 신론 재구성, 성서 비평적 읽기, 자기 수양, 자본주의, 탈인간중심 사유였습니다.

함께

매달 한 번은 함께하시는 분이 성서-말씀 나눔을 맡습니다. 종종 외부에서 오신 분을 모시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한 것은 공동체 설교와 초청 설교에 모여 있습니다.

「설교」라고 생각하면 부담스럽지만,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 본문 하나 고르기
  • 남길 낱말 하나 정하기
  • 어려운 이야기 앞에 안전장치 한 문장
  • 나눔질문 두 개

관심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지난 성서-말씀 나눔은 기록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